지금 당신의 조직에서는 현장의 문제가 들리고 있나요?

2026 52g Day: The Opening of AX Journey

AX 행사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번쩍이는 모델 데모, 도입 ROI, 화려한 기술 스택. 그런데 지난 5월 52g Day의 무대에서 가장 드물게 들린 단어가 'AI'였습니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문제, 현장, 사람, 용기 같은 말들이었어요.
52g Day는 GS그룹의 자발적 혁신 커뮤니티 '52g'가 매년 두 번, 현장의 AX 경험을 가감 없이 나누는 자리입니다. GS타워 25층 오픈홀에 다양한 회사의 AX 담당자 153명이 모였습니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객석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고, 울산·나주 등 먼 곳에서 찾아온 분들도 적지 않았어요.
AX를 한다면서, 정작 'AI'가 주인공이 아니라니. 객석에 앉은 참가자라면 한 번쯤 갸웃했을 거예요. 하지만 여섯 개의 발표가 지나는 동안 그 의문은 다른 깨달음으로 바뀝니다. 52g는 AI를 앞세우지 않았을 뿐, AI보다 먼저 풀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요. 6년간 AX 현장을 누벼온 조직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Chapter 1. AI를 써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꺼내게 하는 것

행사의 문을 연 건 52g를 이끄는 김진아 상무, Ally였습니다. 오프닝 무대에서 꺼낸 이야기가 바로 그 '먼저 풀어야 할 것'이었어요. 많은 조직이 'AI부터 써보자'로 출발하지만, 정작 무엇을 풀지가 비어 있다는 겁니다. 현장엔 분명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도 그게 좀처럼 밖으로 꺼내지지 않고, 위에서는 멋져 보이는 AI 도구만 들이미니 현장은 오히려 서운한 거예요.
그래서 52g가 택한 건 정반대였습니다. 도구를 먼저 쥐여주는 대신, 현장이 자기 문제부터 꺼내도록 도왔죠. 2020년 1인 팀으로 시작해 지금은 25개 계열사 100여 명이 함께하는 이 커뮤니티가 6년간 붙든 것도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현장의 문제를 꺼내게 하고, 그걸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 작은 성공을 만들어주는 일.
그 지향을 한 장에 압축한 게 위 그림, 'AI를 잘 쓰는 나라'예요. 52g라는 베이스캠프를 중심으로 GS 계열사 크루도, 외부 회사도, 중소기업도 각자의 텐트를 치고 모여 있죠. AI를 잘 쓰는 나라는 거창한 국가 전략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제 문제를 푸는 사람이 하나둘 늘면서 뻗어 나간다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이건 구호로만 그치지 않았어요.
대표적인 장면이 GS파워 안전팀 이야기였습니다. 서류 작업 하느라 정작 현장 점검할 시간이 없다던 직원들이, 해커톤에서 직접 작업 위험성 평가 AI를 만들었어요. 1년간 손으로 다듬은 그 서비스는 고용노동부 표창을 받았고, 100인 이하 사업장에 무상 공개하자 두 달 만에 200곳 가까운 기업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회사 안전팀의 현장에서 시작된 것이 울타리 밖 수많은 회사로 번진 셈이죠. 'AI를 잘 쓰는 나라'를 지향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흥미로운 건 안전 전문기관조차 놀란 지점이에요. 프로덕트에서 현장 사람의 손이 닿은 느낌이 난다는 것. 규정엔 유니폼을 입으라고만 적혀 있지만, 직원이 다듬은 AI는 도로 작업 땐 형광 조끼를 입으라고 답하더라는 겁니다. 기술은 누구나 살 수 있어도, ‘현장의 맥락’은 거기 있는 사람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AX는 'AI를 어디에 쓸까'가 아니라, '우리 현장에서 가장 오래 방치된 불편이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죠.

Chapter 2. 무대 위 사람들이 입을 모은 한 가지

이어진 발표들은 회사도 직무도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끝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AI를 가르친 게 아니라, 사람을 움직였다는 것.
10년 차 변화관리자 (주)GS 이수민 매니저는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를 전략이 아니라 감정에서 찾았습니다. "나 때는 이런 거 없어도 잘했는데" 같은 '체인지 몬스터'를 달래는 게 일이라고요. GS칼텍스 여수 공장에서 4년간 500명의 현업을 찾아간 진영주 선임은, 답을 주는 대신 "이거 왜 그래요?"를 끝까지 되물어 진짜 문제를 캤습니다.
GS파워 권용환 선임이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로 꼽은 건 뜻밖에도 도넛과 음료였어요. 현업도 자기 문제 말하느라 힘드니, 당이 떨어지지 않도록 팍팍 공급해야 한다는 겁니다. 챙긴 건 현업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문장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직접 설득한 끝에, 워크숍에 쓸 시간을 얻어냈다고 했어요.
가장 솔직했던 건 현업이 직접 오른 GS리테일 무대였습니다. 자발적으로 꾸린 AX 크루가 1회차엔 가득했다가 4회차엔 자리가 텅 비더라는 고백. 너무 바빠서, 그리고 너무 거창한 문제를 들고 와 성공 경험이 없어서였습니다. 거기서 나온 결론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었어요. 동기부여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작은 성공이 쌓여야 생기더라는 레슨런이었죠. 성공담만 늘어놓는 무대였다면 객석은 박수치고 잊었을 겁니다. 그런데 텅 빈 4회차 사진까지 꺼내놓으니, 듣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기도 똑같이 헤매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구나.
이것이 52g Day가 여느 컨퍼런스와 다른 지점입니다.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정을 함께 나누는 자리죠.

Chapter 3. 그리고, 그 움직임이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갔다

올해 52g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어요. 그동안은 GS 계열사 안에서만 움직여 왔는데, 올해부터는 외부 회사의 변화관리자들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했거든요. GS를 넘어, 다른 회사까지 52g만의 변화관리 노하우를 전파하는 거죠. 이들을 '오픈크루'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올해, 그 오픈크루가 처음으로 52g Day 무대에 올랐습니다.
바로 오픈크루사인 '일동제약'의 해커톤 사례 발표였는데요. 이날 질문이 가장 많았고, 설문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세션이었죠. 참가자들이 적은 이유는 한결같았습니다. GS 사례가 아니라서 더 와닿았다는 것, 외부 회사도 도전한다는 게 신선했다는 것.
AX 사례를 들을 때마다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인데, 그거 GS니까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그런데 일동제약 세션이 그 생각을 한 번 흔들어줬어요. GS그룹이어서가 아니라, 막 변화관리를 시작한 외부 회사의 이야기여서 오히려 더 큰 공감을 끌어냈으니까요.
신기술 도입에 누구보다 신중한 제약회사. 이들의 첫 해커톤엔 33명이 참여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코딩은커녕 AI를 써본 적도 없는 비개발 직군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업무에서 불편한 문제를 직접 들고 오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중요했던 건, 한 사이클을 끝까지 돌아본 경험이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AI가 개발자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문과생인 본인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해요. 일동제약 해커톤을 진행한 유동환 부장은 이 후기에서, 변화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체감했다고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리더십을 대하는 방식이었어요. 결과 공유회에 일동제약 회장님과 사장단을 심사위원이 아닌 청중으로 모셔, 네 시간 동안 현장의 문제를 직접 듣게 했거든요.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리더를 초대한 거죠. AX의 문턱이 기술이 아니라 시작할 용기와, 위를 움직이는 방식에 있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Chapter 4. 모닥불 앞에서야 비로소 꺼낸 질문들

발표가 끝난 후, 자리는 모닥불 토크로 이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들은 이야기를 각자의 경험에 비춰보고, 평소 어디서도 꺼내기 어려웠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장이었어요.
사실 AX 담당자는 회사마다 많아야 두세 명, 적게는 혼자입니다. 그래서 현장이 안 움직인다거나 리더십 설득이 잘 안 된다는 고민을 털어놔도, 정작 사내엔 그 외로움을 공감해줄 동료가 드물죠. 모닥불이 특별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우리 회사도 그렇다는 한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 테이블에 올라온 일곱 개의 고민은, 지금 모든 AX 담당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려면? AX는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그렇다면 어떤 업무부터 바꾸지? 개인의 활용을 어떻게 팀의 성과로 잇지? AI 교육은 어떻게 설계하고, 데이터·보안의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며, 성과는 무엇으로 증명하지?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전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에 관한 것이에요. 툴 사용법은 검색하면 나오지만,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사람을 움직일지는 어디에도 안 나오니까요. 그래서 모닥불 토크의 의미는 답을 찾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내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도, 공감받을 수 있는 자리라는 데 있었어요. 한 참가자의 설문이 그 분위기를 정확히 담고 있었습니다.
"발표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우리 회사의 문제와 아직 불완전한 해결책을 털어놓고 있었어요."
발표장에선 듣기만 하던 사람이 모닥불 앞에선 말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 문제를 말하게 만드는 것. 52g가 6년간 현장에서 해온 그 일이, 이 모닥불 한 자리에 압축돼 있었죠.

Chapter 5. 현장의 문제를 정의해, 동료와 함께 동시에 일한다

이날 깜짝 등장한 허태수 회장님의 메시지도 같은 곳을 향했습니다. 회장님은 2007년 GS홈쇼핑 사장 시절, 회의에서 몇 달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던 조직을 마주한 경험을 꺼냈어요. 고객의 변화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현장인데, 그 현장의 문제는 대개 여러 부서가 얽혀 혼자서는 풀 수 없었죠. 과거엔 그 길목마다 IT가 늘 병목이었지만, 이제는 AI가 그 벽을 상당히 허물어 현장이 직접 문제를 풀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해진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 둘째, 부서의 칸막이를 넘어 '함께, 동시에' 일하는 것. 그렇게 일하면 구성원은 자연히 자발적이고 창의적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대 위 회장님의 메시지와, 참가자들이 설문에 적어낸 키워드가 겹치는 순간이었어요. 문제, 현장, 작은 성공, 함께. 무대가 정답을 주입한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스스로 같은 자리에 도착한 셈입니다.
마무리에서 김진아 상무가 던진 비유도 많은 참가자에게 오래 남았습니다. 많은 회사가 거창한 AI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지만, 정작 자기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건 없는 경우가 많다고요.
AI에만 '몰빵'한 회사는 다음 변화의 물결이 왔을 때 견딜 수 없어요.
우리가 '몰빵'해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업의 본질, 문제, 현장, 동료입니다.
기술은 계속 쉬워집니다. 그래서 다음 변화의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바뀌지 않는 것, 즉 우리 업의 본질과 현장의 문제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52g가 6년 동안 쌓아 올린 노하우를 꿰뚫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 Editor's Note

행사가 끝날 무렵이 되니, AI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적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52g는 AI를 안 다룬 게 아니라, AI보다 먼저 풀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술은 계속 쉬워지고 있죠. 그만큼 우리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해요. 어떤 문제를 풀지, 누구와 함께 풀지에 대한 거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조직에서는, 현장의 문제가 들리고 있나요?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기술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 문제가 들리게 만드는 일을, 52g는 6년간 해왔어요. 그리고 그 경험은 올해 GS 울타리 밖으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과 함께할 외부 회사를 모집하는 자리도 하반기에 한 번 더 열리고요. 'AI를 잘 쓰는 나라'로 가는 캠프에 텐트를 하나둘 더 치는 일이죠. 다음 캠프엔 또 어떤 회사의 텐트가 들어설지 기대가 됩니다. 어쩌면 그 자리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텐트일 수도 있고요.😉 - J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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